SAVE PALESTINE!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기로 하고 제주시내를 벗어나 바닷가로 달렸다.
달린지 10여분만에 속살을 드러낸 푸른 바다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아, 바다다-


해안도로로 달리다가는 너무 오래걸릴 것 같아 1132도로를 따라 달리기로 했다.
다행히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자전거 하이킹엔 제격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하게 있어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오르막도 달리다 보면 어느샌가 다 올라 내리막을 바라보고 있어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

2시간 가량을 열심히 달리니 점심을 먹기로 계획한 애월읍이 나왔다.
애월에서 풍경좋고 해물을 가득 담은 덮밥이 맛있다는 <키친애월>이라는 곳을 찾았다.
키친애월은 공원 옆에 있어서 전망이 탁 트여 있었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는지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아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갈 생각으로
가장 편안하게 보이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 풍경도 보고
카페 한 켠에 놓여진 책들도 가져다 펼쳐보며 쉬었다.
해물버섯덮밥과 돈까스를 먹었는데 역시 섬이라 그런지 해물이 신선하고 양도 많았다.
돈까스는 보통. 밥과 반찬, 샐러드를 넉넉히 주셔서 배불리 먹었는데
밥만 먹고 떠나기 아쉬워서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메뉴판에 팥빙수가 있길래 혹시나 하고 물었다.
단번에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꺄아-
2월에 바다를 보며 팥빙수를 먹을 수 있다니!!!
예쁘장하게 과일과 아이스크림이 올려진 팥빙수가 나타나자
난 거의 이성을 잃을지경이었다. 으하하하, 좋아좋아~~!!!

날 미치게 만든 팥빙수!!


팥빙수를 먹고 다시 달릴 채비를 하는데 애월읍에서 유명한 숙이네 보리빵이 생각났다.
아차, 위치를 확인 안했네. 우리의 동반자 덥칠이(네비게이션, W7)에게 위치를 물으니
왔던 길로 다시 좀 돌아가야 한단다. 에고.
다행히도 먼 곳은 아니어서 금방 찾았다.
3개에 천원 하는 보리빵을 2천원 어치 샀는데 덤으로 2개를 더 주신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중이라고 했더니 춥지 않냐며 커피를 타주시겠다고 한다.
정말, 인심 최고다.

보리빵을 비상식량으로 챙겨넣고 다시 달려 키친애월 근처의 바다쪽으로 가니
예쁘게 잘 놓인 산책로가 나타났다. 바다가 손에 닿을만큼 가까웠다.
산책로가 정말 예쁘게 놓여있어서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근처에 숙소를 잡고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하는 정원 근처에 예쁜 무인까페가 있고 거기서 좀 더 가면 오설록이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는데, 뜨아. 달리다 보니 내륙쪽이라 점점 오르막인거다.
해안도로랑 1132도로는 오르막이어도 스트라이다로 달릴만 했는데
안쪽 길은 수준이 달랐다. (자전거는 평균 시속 20km인데 여긴 5km였다-,.-)
걸었다 자전거 타기를 반복하며 지칠무렵 내리막이 나타났는데,
2km 정도 주욱 이어진 내리막길은 그 동안의 고생을 잊게 할 만큼 시원하게 뻗어있었다.
그렇게 달리다 중간에 살짝 길을 잃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지치기도 하고 이게 왠 삽질인가 싶어 짜증이 나려는 찰나, 트럭 히치에 성공!
스트라이다와 함께 트럭 뒷편에 실려 생각하는 정원 앞까지 갔다.
차가 정말 빠르고 힘이 좋긴 하다. 자전거로 30분은 족히 달려야 할 거리를 5분만에 도착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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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께 배꼽인사로 감사를 전한 뒤 근처에 있다는 무인까페 5월의 꽃에 갔다.
사진에서 보던대로 나지막한 하얀건물이 나타났다.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가득 있어서 깜짝 놀랐다.
주스와 커피 마시면서 한숨 돌리고 돌아갈 방법을 궁리했다.
해가 져서 버스를 타야하는데 버스정류장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이 맞은편에 고산가는 버스가 있었고 1분도 채 안되어 버스가 와서 고산까지 갔다.
승객이 없고 자전거로 여행하는 우리를 기특하게 여긴 아저씨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셔서
관광가이드와 함께 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
고산에서 내려 서귀포행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갔다. 버스가 서귀포 시내까지 가는건 아니어서
다시 택시를 타고 시내로 이동. 그리고 우리의 호프, 용이식당으로 갔다.

양 많고 맛있는 두루치기를 정말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어서 신혼여행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이었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찾아갔는데 이게 왠 우연, 3년전에 앉았던 자리에 또 앉게 된 거다.
감회가 새로웠다^^ 맛은 여전하고 양도 여전하고- 맛있게 밥까지 볶아 먹은 뒤에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친절하고 저렴하기로 소문난 은하모텔. 주인아주머니가 정말 친절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의 흥미진진한 하루가 끝났다.

자전거 하이킹 여행팁
1. 자전거로 일주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해안도로나 1132 도로를 타고 공항-애월-협재까지 달리는게 좋다. 내륙으로 들어오면 계속 오르막이며 협재 이후 중문쪽까지는 달리기가 힘들다는 소문이..--; 무인까페는 지나가다 들르기 좋긴 하지만 자전거로 찾아가는 건 비추.
2. 자전거 하이킹엔 등산복이 제격이다. 면티를 입고 보온복을 입고 바람막이를 입은 뒤 스카프를 두르면 준비끝.
3. 지도는 기본, 버스노선을 미리 프린트 해서 가는 게 좋다. 제주 버스는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어서 하이킹에 지치면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현명.


(유럽여행기는 언제 정리하나..ㅠ.ㅠ)

제주도 오는 항공사가 많아서 비행기표를 쉽게 구할거란 생각은 우리의 착각이었다. 주말에 봄방학이라는 녀석이 숨어있던 것. 다행히 남편님의 예상대로 금요일 퇴근시간 전인 5시 50분 비행기가 있어 바닥난 토요일 대신 금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후다닥 제주도로 왔다.

최근에 생긴 JIN AIR를 탔는데 비행기가 좀 좁긴했지만 승차감(?!)은 괜찮았다. "제주항공은 프로펠러라 불안불안하다는데 진에어는 보잉이라 괜찮을 것"는 남편님의 말이 맞는 듯했다. 단 진에어는 자유좌석제라 늦게 가면 일행이 찢어져서 앉을 수 있으니 (탑승시간을 또 헷갈려 마지막 콜에 미친듯이 달렸던 우리가 그랬다-.- 비행기 한두 번 타는 것도 아닌데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겄다;;;) 동행이 있으면 일찍일찍 가야한다.

제주에 도착해서 타이어에 바람넣고 반짝이등 붙이는 등 자전거 정비했더니만 거의 한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게다가 우리가 들고간 네비(W7) 배터리가 충전이 다 안되서 GPS가 방향을 못 잡길래 일단 택시타고 미리 알아둔 음식점 선우영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점 전화번호는 미리미리 알아가는 게 좋다.) 갈치나 고등어 조림이 맛있다는 소문에 갈치 조림 시켰는데 오오- 정말 바닥까지 쓱쓱 밥 비벼 먹고 싶은만큼 맛있었으나 양이 많아서 다 못먹었다. (3명이 가서 작은 거 시키면 좋을 듯)

반찬도 넉넉하게 채워주시고 음료까지 서비스로 주신 덕분에 만족에 또 만족. 사실 신혼여행으로 제주도 왔을 때 공항 근처 식당에서 갈치조림 가격보고 놀라 너무 비싸다며 안 먹었다. 근데 알고 보니 제주도는 갈치나 고등어 조림이 서울에서 보통 먹는 것보다 훨씬 양이 많아 가격도 비싼 거였다. 그래서 이번엔 어차피 제주도 온 김에 맛있다는 갈치조림을 먹기로 했던 거다. 암튼, 대만족.

숙소는 근처 모텔로 잡았다. 신제주쪽 모텔이 별로라는 소문이어서 한국관광공사에서 인증한 숙소라는 곳을 잡았다. 근처 다른 모텔 가격 알아봤는데 좀 더 비싸고 좀 피곤하기도 해서 여기 안착. 시설은 보통인데 방음이 좀 안되는구려... -.-  

내일을 위해 고고싱~~



유럽은 자전거 도로가 정말 잘 되어 있다. 우리가 이번에 간 도시는 파리, 브뤼셀, 베를린, 드레스덴, 말뫼, 레스테나스, 상뜨페쩨르부르그, 모스크바인데, 자전거도로가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을 꼽으라면 파리와 베를린, 드레스덴 정도? 파리와 독일 두 도시는 자전거도로가 자동차도로 옆에 따로 있다. 자전거 신호등도 별도로 있으니 자전거로 달리기에 좋은 건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스웨덴의 말뫼도 잠깐 달려보긴 했지만 자전거 타기엔 나쁘지 않았다. 레스테나스는 시골이라 자전거 도로는 따로 없고. 아마 도시로 가면 자전거 타기가 좀 나을 듯. 스웨덴은 친환경적인 국가로 소문난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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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쩨르부르크 이삭 성당 근처 공원, Lomo, Reala


러시아의 상뜨페쩨르부르그와 모스크바는 자전거 도로가 따로 나있는 건 아닌데 워낙 보도블럭이 평평하게 잘 되어 있어서 보도로 달리기는 좋다. 단 턱이 너무 경사지다는 거 빼고. 브뤼셀은 동네 중앙이 로마시대 길처럼 돌로 닦여 있고 언덕이 있어서 자전거 타기엔, 특히 스트라이다 같이 기어 없고 바퀴가 작은 자전거 타기엔 젠병이다.  그치만 도시 자체가 작고 아담해서 자전거가 있으면 이동하기 정말 좋다. 차타기엔 아쉬운 크기의 도시라고나 할까. 아! 브뤼셀에선 너무 달리면 안된다. 도시가 너무 작아서 달리다가 지도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생길수도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우리가 그랬다 --;)  

아무리 브뤼셀이 자전거 타기 어려운 동네라고 해도 우리나라만 할까. 한국에서 자전거 타기란 한강고수부지에나 가야 가능한 것 같다. 우리 동네에서 거기까지 가는 것만 해도 쉽지 않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보도블럭이 평평히 깔려 있는 것도 아니고.

성미산 근처에 얼마전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도로 한쪽을 자전거 도로로 만들었는데 일요일에 버스타고 지나가는 길에 보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정부에서 도로 폭을 줄여서 자전거 도로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정말 반가운 소리다. 고유가 시대에 자전거 만큼 경제적인게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환경 지키는 일에도 도움이 되고. 고유가 시대를 계기로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면 좋겠다. 생생내기용 자전거 도로는 노 땡큐!
 
  

남편은 생각지도 않게 자전거 여행을 제안했다. 그리곤 열심히 알아보더니 스트라이다(STRIDA)라는 멋진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스트라이다는 원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고안된 이동수단용 자전거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녀석은 이동하기 쉽게 만들어져있다. 툭- 치면 펴지고 틱 건드리면 접히는 이 녀석은 정말 귀엽고 멋지다.

스트라이다로 유럽을 달리는 일은 연예인과 함께 다니는 일 만큼이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이었다. 공항에서부터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보긴 했다. 시내까지 기차를 타고 갔는데 기차에서 내릴 때는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그걸 몰랐던 우리는 멍하니 서 있다가 뒷 사람이 버튼을 누르라는 소리에 살짝 당황하여 허둥지둥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 스트라이다를 들고 내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데 버튼을 누르라고 이야기 했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한테 말을 걸었다.

"그 자전거 여기서 샀니?"
"아니. 한국에서 들고 왔는데."
"그 자전거 어디서 산거야?"
"한국에서 샀지..아마 영국에서 만들어졌을거야"
"아- 멋지다. 나도 사고 싶은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건 시작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의 눈이 우리를 뒤쫓아왔고, 어딘가에 세워두면 유심히 자전거를 살펴보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파리 현대미술관 갔을 때 길 모퉁이에 세워두었는데 어느 사람이 이리저리 살펴보길래 나중에 훔쳐가지 않을까 싶어 다른 곳에 옮겨두기도 했고 (나중에 터득한 건데, 스트라이다를 길가에 세울 때는 자전거가 많이 세워진 어느 사이에 끼워서 세워두는 게 좋다. 이목을 상대적으로 적게 끌어서 안전하다고나 할까.) 브뤼셀에선 어느 부랑자 같은 아저씨가 정말 뚫어지게 오랫동안 나를 주시해서 (사실은 내가 가진 스트라이다를 주시해서) 겁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 아저씨는 "이 녀석을 만든 사람은 천재다"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상트페쩨르부르크 이삭 성당에선 아예 이리저리 사진까지 찍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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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테나스에서 스트라이다 3.0 타고 달리는 남편님. Lomo, Reala



스트라이다에 눈독을 들인 사람 중 가장 웃긴 사람은 모스크바 풍물시장 상인 중 한명이었다. 시장에 갔을 때 사람들이 얼마냐고 물으면서 한번만 타게 해달라고 했다. 타게 하는 건 사실 큰 문제는 아닌데 자전거를 타고 날라버릴까봐 우린 웃으면서 단호하게 안된다고 거절해야 했다. 사람들 덩치가 커서 스트라이다가 하중을 못 견딜 것 같기도 했지만 스트라이다가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이 더 컸다. 암튼, 어떤 상인 한명이 우리에게 또 물었다.

"와- 자전거 멋진데? 이거 얼마야?"
"300 유로. 60,000 루블쯤 할거야."
"그래?"

그 사람이 갑자기 자기 가게에서 책을 한권 꺼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야, 이 책 영어로 된 모스크바 안내 책인데 너네 여행하려면 영어로 된 책 필요하잖아,
 이 책이랑 그 자전거랑 맞바꾸는 거 어때? 이 책 너네한테 진짜 도움될 걸?"

푸하핫- 이 사람은 6만 루블을 6천 루블쯤으로 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거절했다.
"우린 오늘 모스크바 떠나서 그 책 필요없어. 안녕~"

스트라이다가 워낙 작아서 접지 않은 채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고 식당 들어갔다가 열라 욕먹은 적도 있었다. 짜증나서 다른 식당으로 옮겼는데, 그 식당은 스트라이다를 보더니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완전 잘 해줬다. 뭐 이런 웃기는 시츄에이션이..

스트라이다는 우리를 울고 웃게 해준 녀석이었다. 물론 웃은 적이 훨씬 더 많다. 스트라이다가 없었다면 파리 시내와 베를린 티어르가르텐, 상뜨페쩨르부르그 여름궁전을 달리던 그 기분을 어떻게 느꼈을까. 우리가 자전거 가지고 여행 간다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이 될거라며 걱정했다. 직장 동료들은 내심 우리가 도중에 자전거 팔아먹었을 거라고 생각하고도 있었다. 처분하고 올까 생각도 했지만 팔아도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오기 바로 전에 할 생각이었다. 한국에 오면 또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팔 생각이 별로 없다. 스트라이다로 제주도도 가야 하고, 자라섬이나 가평도 가고 싶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청계천과 한강따라 일주라도 해 봐야지-!

아- 지금도 티어가르텐 숲속을 가르며 달리던 생각을 하면 온 몸이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해 본 사람만 알겠지? 스트라이다로 유럽 달리기, 원추!!



파리 샤롤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시내에 가야 해서 남편은 기차표를 구하러 가고 나는 자전거 2대를 지키며 벤치에 앉아 파리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려 공항을 둘러보고 있었다.

 

천장에서 눈을 돌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쓰레기가 쌓여있는 카트와 구부정하게 앉아 신들린 듯 무언가를 먹고 있는 걸인이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낸 과자봉지 안의 부스러기를 털어넣기가 무섭게 시들어버린 샐러드를 집어 먹는 모습. 아무렇게나 어깨까지 자란 흰머리의 걸인은 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집으려 쓰레기 더미가 가득한 카트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곤 냉큼 땅콩을 주워 입 속으로 넣었다.  

 

파리도 사람 사는 동네이니 걸인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내 무의식 속의 파리는 예술과 낭만이 가득한 동네였는지 걸인의 모습은 사뭇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가난은 이 곳, 파리에도 존재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모습, 이 걸인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여행을 하는 걸까, 순간 부끄럽고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여행 첫머리에서 이 걸인을 마주하기 때문에 펼쳐질 여정 동안 고민하고 성찰하지 않겠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게 여행은 단순히 즐기는 것만은 아니지. 세상을 보며 고민하고 나의 길,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그 목적이지 않니, 하고 내 자신에게 물었다. 고개 돌리고 싶어도 직시하자- 그것이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이니까.. 라고 내 자신에게 이야기 했다.




나: "아이를 낳으면 여행 다니기 힘들겠죠?"
남편: "아무래도.."
나: "그 전에 당신이랑 여행 가면 좋겠다-"
남편: "어디로 가고 싶은데요?"
나: "음..."
남편: "난 인도도 좋았는데"
나: "나두나두- 난 다질링(Darjeeling)이 좋았어요. 네팔과 가까운 곳이라 네팔리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좋았지.. 네팔 가면 좋겠다.."
남편: "그럼 네팔 갈까요?"
나: "티벳도 가고 싶은데.. 티벳에서 네팔을 거쳐 인도나 베트남 쪽으로 내려오는 것도 좋겠는데요"
남편: "캄보디아, 베트남 쪽으로 오는 것도 괜찮을 듯.."
나: "그럼 우리 전세금 대출 되면 그렇게 가는거당- 으하하"


얼마 뒤..

나: "네팔은 6월부터 우기 시작이라는데요..ㅠ.ㅠ"
남편: "흠..그럼 어딜가지.. 난 러시아에 또 가고 싶은데. 상뜨 페쩨르부르크(St. Petersburg)
         정말 예뻐요."
나: "난 스웨덴 베이스(YWAM Restenas base) 가고 싶은데.
      그럼 스웨덴 갔다가 러시아 가면 되겠네~"
남편: "파리가 정말 좋다는데.."
나: "난 독일도 가보고 싶은데.. 그럼 파리-독일-스웨덴-러시아 가면 되겠다~"

한 달 뒤

남편: "전세금 대출 됐대요"
나: "앗싸~ 그럼 비행기표 사요 ㅎㅎ"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여행지 선정과 관련해선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대충 적어봄.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가는 지혜를 찾아

 

번역본에 붙은 제목 그대로 열하일기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다. 여기서 여행은 스쳐 지나가는 파노라마나 이국적인 풍물의 나열이 아니라, 낯설고 이질적인 사건들의 서사다. 이 사건들 속에서 여행이 곧 삶이 되고, 삶이 곧 길이 되는 변환이 일어난다. 고원한 것과 일상적인 것, 익숙한 것과 낯선 것들이 교차하면서 예기치 않은 리듬과 강렬도를 만들어내는 유쾌한 유목일지, 그것이 바로 열하일기다.  

 

드디어 ‘해외여행자 천만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지속적으로 이주와 이동을 요구받고 있다. 말하자면, 이제 삶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흐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여행의 비전, 이동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지나간 것에 붙들리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주어진 현재 속에서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가는 지혜, <열하일기>에는 바로 그 정수가 담겨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가 지난 10여년간 주제넘게(!) <열하일기>의 전령사 역할을 자처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 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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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씨가 책을 내면서 쓴 글의 일부다. 6월말, 2주간 러시아 여행을 남편과 계획하고 있다. 삶이 되고 길이 될 여행. 생각하니까 가슴이 떨린다. 여행 전에 열하일기 꼭 사서 읽어야겠다. 러시아에 대해 공부도 미리 하고. (일본 여행 땐 아무 준비없이 가서 살짝 아쉬웠다 --;)

 


오마이뉴스- 늙은 바이킹을 위한 '김치 담그는 법' 읽기

내가 사랑하는 땅 노르웨이.
노르웨이에서 있던 두 달 동안,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과 밝게 빛나는 자연이었다.
아.. 기사 읽으니 스칸디나비아로 여행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한겨레 기사 보기 - 알뜰 여행자는 짐싸기 전에 머리 싸매


청량산 가는 사색로 ‘퇴계 녀던 길’
봄이 등을 떼민다. 좀 걷자고. 공원 벤치에는 햇살이 오글오글 모여 있고, 지렁이가 여기저기 숨구멍을 뚫어놓는 통에 땅은 헐거워졌다. 고운 볕발에 고슬고슬해진 흙길에선 발가락 사이로 봄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것 같다.

안동에 ‘퇴계 녀던 길’이 있다. 세상 잡것과 고민으로 가득한 ‘머리통’을 조금 비울 수 있는 사색의 길이다. 봄도 느낄 수 있고, 마음공부도 할 수 있다. 역사와 스토리도 있다.

퇴계 녀던 길은 퇴계 이황 선생이 청량산 가던 길이다. 퇴계는 청량산을 유독 사랑했다. 주자가 무이산을 애찬했듯 퇴계는 청량산을 이상향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퇴계는 어려서 청량산 자락에서 숙부로부터 논어를 배웠다. 청량산은 원효와 김생도 수행했다는 곳이다. 퇴계 녀던 길은 처음에는 둑길, 나중에는 험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숲 좋은 오솔길이다. 오솔길은 숲을 가로지르고, 강변을 옆구리에 낀 채 언덕을 넘어 지줄지줄 이어진다. 소나무, 느티나무 향기가 코 끝을 파고 들고, 머리가 하얗게 센 길섶의 물억새도 정겹다. 돌자갈을 핥고 넘어가는 낙동강 여울소리,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도 듣기 좋다. 이런 길은 약 3㎞ 정도. 당신의 귀에서 MP3를 빼도 좋다.

강변 너머에는 깎아지른 벼랑들이 우뚝 솟아있다. 험산구곡을 돌아 흐르는 강물 위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봄햇살이 눈부시다.

퇴계의 15대손인 이동은옹(99)은 “퇴계 선생은 청량산을 마음에 두고 많이 다니셨다”며 “근동의 선비들과도 함께 청량산을 찾았다는 시도 남기셨다”고 했다. 퇴계의 영향으로 청량산을 둘러보고 유람기나 시를 남긴 사람은 100여명. 시는 1000여편에 달한다. 청량산은 영남 선비들의 마음 수행 길이었음은 분명하다. 퇴계의 시 한 수 들어보자.

‘어느 곳을 가더라도 구름 메(산) 없으리오/ 청량산 육육봉이 경개 더욱 맑노매라/ 읍청정 이 정자에서 날마다 바라보니/ 맑은 기운 하도 하여, 사람 뼈에 사무치네.’

퇴계는 ‘유산(遊山)은 독서와 같다’고 했다. 산에 가는 것 자체가 마음 수행, 지식 수행이란 뜻이다.

사실 소요와 산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줬다.

루소는 ‘나는 걸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걸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으며, 니체는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올린다’고 했다. 칸트는 매일 오후 5시 그의 고향 퀘니히스베르그의 마을 길을 산책, 마을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는 헤겔과 야스퍼스, 막스베버, 괴테가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소크라테스와 당대의 철학자들도 산책을 하면서 의견을 펼쳤기에 소요학파란 이름까지 얻었다. 다산 정약용도 유배지 다산초당에서 강진 백련사까지 오솔길을 걸으며 ‘목민’(牧民)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걷기는 단순한 다리운동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을 깨우쳐 주는 사색의 방법이다.

퇴계 녀던 길 끄트머리에 농암종택이 있다. 농암 이현보(1467~1555) 후손이 산다. 농암(聾巖)이란 귀머거리 바위란 뜻이다. 이 집의 종손 이성원씨는 “농암이란 그의 호에는 결국 혼탁한 정치판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했다. 실제로 서른둘 젊은 시절부터 일흔여섯까지 무려 44년을 벼슬살이했던 농암은 중앙 관직을 싫어했는지 주로 외직을 자처했다.

농암의 원래 집터는 안동댐 건설로 물 속에 잠겼다. 후손이 5년 전 도산면 을미재 가송리로 집을 옮겨왔다.

퇴계가 공부했다는 오산당 앞길. 퇴계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과 영남 학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다시 집을 세우고 청량정사란 현판을 내걸었다.

퇴계 녀던 길은 현재는 농암종택에서 끊어지지만 과거엔 청량산이 종착지였다. 퇴계는 15세때 청량산에서 숙부인 송재 이우 선생에게 글을 배웠다. 글 공부를 하던 곳이 오산당(현 청량정사)이다. 오산당에서 응진전 가는 길은 숲 좋은 오솔길이다.

오산당 길은 퇴계뿐 아니라 원효도 걷던 길이다. 눈 밝은 원효가 절터를 잡았다. 응진전으로 이어지는 길. 깎아지른 벼랑이다. 원효는 왜 천길 벼랑 아래 암자를 세웠을까. 아마도 수행자란 늘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축가 이일훈도 경기 화성 ‘자비의 침묵 수도원’을 설계할 때 계단에 난간을 없앴다. 수사들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일훈은 수도자는 늘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응진전은 천애절벽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는 형국이다. 벼랑을 끼고 도는 이 길을 따라가면 김생이 공부했다는 김생굴도 나타나고 절벽을 돌아서면 최치원이 마셨다는 총명수도 있다. 퇴계나 원효, 김생도 이 사색의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이 한올 한올씩 뽑아낸 생각으로 화엄사상을 이뤘고, 퇴계학을 완성했을 것이다.

올 봄엔 좀 걷자. 생각도 좀 하자. 요즘 세상엔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하는 게 너무 많다. DMB TV, MP3, 컴퓨터, 플레이스테이션…. 감각은 기계와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었다. 머리는 무뎌졌다. 뇌세포는 상상의 세계를 쫓아 퍼즐을 맞추고 잇는 것에 둔해졌다.

팔을 힘차게 흔들어대는 파워 워킹은 하루 이틀 접어두고, 봄볕 아래 느릿하게 걸어보자. 온 몸의 숨구멍을 열어놓고, 볕좋은 숲길을 밟다보면 한 순간이나마 돈 생각, 집 생각, 승진 생각, 공부 생각도 지울 수 있다.

프랑스의 다비드 드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걷기를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라고 했다. 걷기는 봄날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원효나 퇴계처럼 우주에 뜻을 두지는 못하더라도 하루쯤은 축복 같은 봄날을 머리 속에 담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여행가이드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우회전, 35번 국도를 타고 봉화 방면으로 달린다. 안동시내에서 무조건 도산서원 이정표만 보고 달린다. 도산서원(054-856-1073) 주차장을 지나 고갯마루를 넘으면 자그마한 개울이 나온다. 우회전하면 퇴계종택. 퇴계종택과 이육사문학관(054-840-6593)을 지나 달리다보면 자그마한 삼거리에 ‘백운지’라는 돌비석이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내려가면 낙동강. 다리를 넘지 않고 둑방길을 타고 좌회전해서 길이 끊어지는 지점까지 달리면 퇴계 녀던길 이정표가 보인다. 농암종택까지 왕복 2시간 거리.

청량산도립공원은 봉화방면을 달리면 나온다. 청량사에 오르기 직전에 산꾼의집 가는 등산로를 타면 된다. 산꾼의집 바로 옆이 오산당이다. 산꾼의집 옆길로 걸으면 응진전 가는 길이 나온다. 산꾼의집에서 응진전까지는 15~20분 거리.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유교문화박물관(054-851-0700)도 들러볼 만하다. 농암종택(054-843-1202), 수애당(054-822-6661), 지례예술촌(054-822-2590) 등 고택에서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경향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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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이 길 나도 걸었다.
농암종택에서 하루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남편이랑 가고 싶다.
김윤규선생님께서 '아이 안 나으면 답사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남편이랑 가면 될 듯. 하하.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여행하고 싶다. 걷고 싶다.
어느 글에서
글쓴이의 엄마는 가능한 많이 발이 흙을 마주하라 했다고 썼다.
걷는 동안 신성한 그 무언가를 만날 수 있어서였을까?

얼마전 축령산 휴양림에 다녀왔는데
산에서 내려올 때 걸었던 산책로가 생각난다.
날이 조금 더 따뜻했다면
몇 번을 왔다갔다 했을지도 모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산책로.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그런 산책로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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