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PALESTINE!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하나님이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에게 매 7년마다 안식년을 지키라 하셨다.  이 해에는 파종하지 않으며 자연적 산출물은 거두지 않고 주인과 종과 객과 짐승들이 같이 먹는다(안식년, 레위 25:4-7). 또 종 된 자를 놓아주되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살 만큼 후히 주어 보내야 한다(면제년, 신 15:12이하).

한 마디로, 이스라엘은 일상생활에서 늘 가난한 자에게 손을 펴서 쓸 것을 넉넉히 주어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신 15:7-11). 그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 하나님이 구원하셨으니 그 종 된 때를 기억하고 이 말씀을 지켜야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15:15).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딤전 6:17이하)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가진 자는 재물에 뜻을 두지 말고 언제나 후히 이웃에게 베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참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년에 관한 구약의 가르침은 꼭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보편적 규범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난 1월 20일에 일어난 용산 재개발 지역 참사는 우리 사회가 하나님의 이 보편적 명령을 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2월 1일 다릿골교회 오늘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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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철거민을 나그네, 객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고 늘 말씀하셨다. 세입자였던 철거민들은 나그네였다. 그들은 용산으로 흘러들어왔고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나그네 또는 종과 같은 세입자였다.

구약시대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고 6년간 일한 종을 7년째 되는 해에 자유인으로 풀어주되 나가서 부족하지 않게 먹고 살 수 있도록 주인의 가축과 곡식을 함께 내어주라고 명령하셨다.

용산 철거민들에게 집주인이 세입자들에게 다른 곳에서도 생활기반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넉넉하게 그들의 손을 채워서 보냈다면 과연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담보로 싸울 때는 그만큼 극한 상황에 몰려있다는 것을 정부는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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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릿골 교회는 스무 명이 채 모이지 않는 작은 교회다. 그 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1/4 가량은 근육병을 앓고 있는 잔디네 식구들이고, 나머지 1/4 가량은 가진 것이 별로 없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올리는 기도는 "우리보다 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주님께서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다. 설교 또한 돈이나 명예에 욕심내지 말고 이웃된 사람들을 돌보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강남의 큰 교회들이 용산 참사에 대해 관심이나 가지고 기도나 했을까? 다릿골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설교와 기도를 들으면서,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기에 자신들보다 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이 교회가 참 복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쉽고 눈물이 났다.
방황하고 많이 힘들었던 지난 일년 반,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영혼에 힘을 불어넣어준 고향 같은 다릿골 교회에 몸 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파리의 개선문..나도 이 각도로 찍었는데 안나왔다-.- 이건 누군가가 찍어놓은 사진;;;

스트라이다를 끌고 개선문을 들어가려다 경찰에게 제지를 당해 집입에 실패한 뒤였다.
마침 빡시게 박물관을 다녀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그 날은 아예 스트라이다를 숙소에 두고 버스를 타고 파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야경을 볼 겸,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으로 갔다.

개선문은 8갈래(맞나?)길이 모이는 정 중앙에 있어서 도로 위로는 갈 수가 없고,
지하차도를 통해 갈 수 있다. 다시 시내로 갈 때도 마찬가지로 지하차도를 지나가야 한다.
파리에는 박물관 패스가 있어서 패스 하나로 여러개의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는데,
그 패스가 있으면 개선문도 들어갈 수 있다. 패스에는 2일, 4일 같은 유통기한이 있어서 기한이 지나면 쓸 수 없다.

우리는 2일권을 사서 루브르, 오르세, 모네, 퐁피두 등의 박물관을 원없이 돌아다니고, 마지막으로 꼬불꼬불 계단을 올라 개선문 꼭대기에서 파리시내를 내려다 보고 지하차도로 내려왔다. 지하차도의 중간쯤 왔을까, 중동계 이주민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에펠탑 모형의 열쇠고리를 팔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역시 대형마트 캐셔나 공사장 인부처럼 상대적으로 나쁜 일자리는 아프리카계 이주민이나 중동계 이주민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아무리 관대해도 이주의 빈곤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 일자리마저 찾지 못한 이주민들은 박물관이나 관광지 앞에서 얼음물을 팔거나 열쇠고리 같은 것들을 팔았다.

남편은 지인들에게 줄 생각으로 열쇠고리를 사야겠다며 그 청년 앞에 서서 열쇠고리를 뒤적였다.
나는 그 청년이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파리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의 일상은 어떠할까, 그는 어떤 걸 꿈꾸며 살까 등을 생각하다가  문득, 이 청년이 개선문엔 올라가 보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저기.. 혹시 여기 위에 있는 개선문 올라가 봤어요?"
"아뇨."
남편은 열쇠고리를 몇 개 집어들고 청년에게 돈을 건넸다.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이 패스를 가지고 가면 개선문에 올라가 볼 수 있어요. 이건 오늘 밤 9시까지 밖에 못쓰니까
개선문에 올라가 보고 싶으면 이 패스를 가지고 30분 안에 개선문으로 가 봐요."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말을 듣더니 이내 고맙다고 말하며 패스를 받아들었다.

그는 우리가 떠나기 전 주변을 살짝 살피면서 내 손에 몰래 열쇠고리 하나를 쥐어줬다.
그리고 떠나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고맙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한 개에 일유로도 안하는 열쇠고리지만 그에겐 작은 것이 아니었을텐데
고마움의 표시로 내게 주었던 것이다.  


어차피 아무런 표시도 없는 패스니  시간 내에만 가면 청년은 개선문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니 그가 여행객 같지 않은데 패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굳이 그의 신분을 확인하려는 사람도 없었을거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좁은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다다라 그는 사방으로 뻗어나간 대로를 볼 것이고 밤하늘을 가르는 에펠탑 불빛을 볼 것이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가늠하며 눈을 반짝였을 것이다.  

그에게 힘겨운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가슴트이는 시간이 되었을까.




 

"마음으로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이는 노력해야"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 오게 되었나?

 

1988 민주화 항쟁 이후 버마에서는 1992년까지 모든 대학이 문을 닫았다. 이후에도군부의 감시 때문에 학교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없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신청한 상태였는데 상황이 불안정 하다 보니 공부할 만한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어느 한국에서 연수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금 버마에서 공부하는 힘들 테니 한국에서 연수생을 하는 것이 괜찮을 같다 생각하여 오게 되었다. 그것이 1994년도 일이다.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었는데, 동안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나?

 

제도적인 문제는 바뀐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연수생 제도는 없어졌지만 노동자에게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는 연수생제도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허가제

아닌 고용허가제는 이름에서도 있듯이 사업주에게 유리한 제도다. 여전히 고용주가 노동자의 여권을 보관한다. 그것은 노동자의 자유가 침해 당하는 것이다. 자신을 증명할 여권을 가지지 않아서 자신의 통장을 직접 만들고 싶어도 만들 없고, 괜히 단속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서 노동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제도 자체가 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내모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농업·어업 비자를 받아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 안에 취업해야 하는데 겨울에는 농업·어업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비자를 가지고 오는 노동자 중에는 오자마자 불법체류자가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한국정부는 겨울철에 농업·어업 비자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농한기에는 제조업 쪽에서 일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디어에 대해서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일부 미등록체류자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크게 보도하면서 모든 미등록체류자들을 '불법을 저지르는 범죄자' 취급한다. 실제로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 외국인들은 미국인들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방송에 나온다.

 

노동허가제에 대해 잠깐 이야기 했는데, 한편에서는 이주노동자에게 이동의 자유를 주면 돈을 조금이라도 주는 곳으로 계속 옮겨 다녀서 고용주들이 사업을 제대로 없을 이라는 우려를 하는데? 

 

사업장을 변경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는 돈보다는 사업장 환경 때문에 이동하려는 사람이 많다. 지금 일하는 회사가 작업장 안전 관리를 하지 않으니까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는 많은 이주민들은 최저임금을 적용한다고 해도 하루에 8시간만 일하는 회사가 있다면 거기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 잃어가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일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적당한 시간만큼 일하고 여가 시간에 공부도 하고 싶어한다. 임금을 주기 때문에 직장을 옮긴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욕심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일부다.

 

한국이 다문화 사회라고 생각하나? 다문화 사회를 위해서 한국정부, 한국사람, 이주민은 각각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나는 한국사회가 말로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진실하게 다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혼이민자들은 자기나라와 부모를 떠나서 결혼하러 왔는데 그들을 믿고 여권을 빼앗아 보관하고 아이 낳아야 시민권 주는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달라진 것이 많다. 10 전에는 다문화 아예 없었는데, 이제는 한국문화와 다른 문화가 섞이고 있으니 옛날보다 문화가 다양해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나 기업은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한국말을 하고 한국 문화를 아는 노동자들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말과 문화를 배운 노동자들을 이용해서 한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있도록 한국정부와 기업은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가는 노동자들을 현지에서 이용하면 한국이 세계에서 크게 성장하지 않을까?

 

이주민들은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실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이주민들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농촌에 시집 결혼이주여성을 예로 들어보자. 결혼해서 한국에 오자마자 사람들은 가사일도 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한다. 한국말과 문화를 배울 시간이 없는 것이다. 노동자로 들어온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민들이 3개월 정도 언어와 문화를 배울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여주고 공부할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주민들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면 좋겠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워간다는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길 바란다.  

 

* 글은 이주민을 위한 신문, 다국어 뉴스레터 MigrantOK 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내가 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사 응답하시다.

무기력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던 나날들이었다.
여러가지 상황들이 나를 몰아가긴 했지만,
어찌됐든 그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은 철저히 나의 몫이었다.

막막하고 답답하여
잠도 못 이루고, 밥도 잘 먹지 못하던 며칠동안,
마음 한 구석에는
그 분을 바라는,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마지막 여름 방학이었던가,
진로를 생각하면서 괜시리 답답하고 막막하고 내가 못나 보여
혼자 방에서 나오지도 않은 채 우울함 속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앞으로 살아갈 수나 있을까 걱정하던 때,
우연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 시간을 접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깨달았던 여러가지가 주님이 말씀하신 방법이었다.
 
이번에 우울하고 기운없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면서
그 분이 내게 말씀하셔서 이 상황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분명히 내게 새 힘을 주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밤새 뒤척이고 잠 못이루다가 맞이한 오늘 아침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엎드려 기도하다가 못 끝낸 일을 겨우겨우 마무리 짓고
세수를 하러 돌아서는데,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오늘 이 터널을 빠져나가겠구나.
특별히 어떤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짧지만 강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나는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지금 이 시간까지 잠 못 이루며
그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놓고 있다.

한가지 깨달음이 있다면,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겸손함이 나를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한 동안은 이런 터널을 만나지 않겠지?
그럼 달려가는거다-

- 교회에서 나눈 배추에서 얻은 기쁨.
  지승원 교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라는 말씀,
  이효정 선생님과의 대화- 이주민에 대한, 이주민 센터에서 일하는 우리의 태도-
  레이첼 카슨의 전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한겨레 기사보기- 박노자 칼럼 '무지개 나라'가 되기 위해서

다문화 사회를 위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한국화를 고수하는 한국 사회.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면서
서로 섞이고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회일텐데.
정부는 이런 걸 언제쯤 인식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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