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PALESTINE!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두살배기 조카가 워낙 TV 광고를 좋아해서 요즘 더욱 광고를 많이 보게 된다. 아래 글을 읽기 전부터 천박한 자본주의의 옷을 입은 광고에 혼자 좀 짜증냈었는데 이 글보며 좀 시원하고 고마웠다고나 할까. 울 조카가 부디 광고가 보여주는 사상에 물들지 않았음 좋겠다.  

부디 평온한 광고를 [한겨레21 2009.07.03 제767호]

프랑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많은 유학생들이 그렇듯이, 귀를 열어볼까 하고 오랜 시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곤 했다.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으니,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이미지들, 이를테면 중년의 여성이 매력적인 눈매로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이나 중동·아프리카의 낯선 풍경들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심심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 프랑스 텔레비전의 밋밋함에는 내 청취 능력 말고도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정규 프로그램과 프로그램의 사이 광고에 있었다. 상업광고가 대체로 단순하고 직선적이어서 시청자에게 거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던 것이다(간혹 이미지가 독창적이거나 유머가 담긴 광고도 보게 되는데, 에너지 절약이나 적십자 모금과 같은 공공 영역에 속하는 광고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반대로, 가끔 한국에 들어가 있는 동안 텔레비전을 보면 내내 불편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프랑스 텔레비전 앞에서 느끼는 밋밋함은 무의식적인 싸움을 멈출 때 찾아오는 평온함 같은 것이다.

한국의 광고들이 시청자의 정신을 혹사시키는 그 지독한 긴장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상업광고들이 노골적으로 계층 간 위계나 계급 간 구분을 판매전략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동창회에서 두 명의 젊은 부인이 대화를 나눈 뒤, 어느 한쪽이 새로 이사 들어간 아파트의 입구에 도착해서 “네가 더 성공했네”라고 말하는 광고가 그렇다. 아니면 아예 그런 스토리도 귀찮은 듯 그냥 단순 무식하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친구의 질문에 무슨무슨 차로 대답했습니다”라는 자본주의식 선문답을 내놓는다.

이런 종류의 광고는 상품에 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사물의 소유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고 암시하고 주입할 뿐이다. 이런 광고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이유 없이 그 상품을 사회적 신분이 나뉘는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물건에 아무런 관심도 관계도 없던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그 상품을 소유하지 못한 집단에 속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으로부터 위화감 내지 불안감이 생기면, 자 이제 악순환 속으로 빨려 들어갈 준비를 갖춘 셈이다. 친구를 만나고, 빚을 내고, 물건을 사들이고, 동료를 만나고…. 물론 끝은 보이지 않는다. 광고를 기다리는 상품은 무수히 많으니까.

상품의 잠재적 소비층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그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할 만한 요소를 끌어들이는 것은 광고 제작의 기본에 속할 것이다. 아이스크림 광고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등장하면 좋을 것이고, 다이아몬드 광고라면 사치스러운 분위기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심각한 문제는, 어떤 상품이 두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가른다고 주장하거나 암시하는 경우다. 놀이터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즐거워하는 아이들 사이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뽐내면서 한 아이가 걸어간다면, 당신은 그것이 정당한 광고라고 생각하겠는가. 위에서 예로 든 승용차와 아파트가 바로 이 경우다. 고가품에 특히 이런 종류의 광고가 많은 것은, 그만한 비용을 들여 그 물건을 사야 할 이유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한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기에

광고가 개입하는 지점은 상품 간의 차이이지, 사람들 사이의 위계가 아니다. 국제상공회의소(ICC)의 광고활동 기준에 따르면, “상품의 소유가 다른 아이에 비해 우월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이점을 줄 거라고 아이들에게 암시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은? 신분의 스트레스를 버겁게 껴안고 사는 한국의 어른들은? 그런 광고를 무시할 만한 힘을 기를 수 없다면, 마찬가지의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1. 너무 잘 잔다. 어제도 부평에서 서울역까지 장장 40분 넘게 정신없이 잤다.
자고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에어컨 때문일거라고 믿고 싶지만 입을 벌리고 잔 탓이 아니라고도 장담 못 할만큼 정신없이 잤다.
새로 산 mx200 헤드폰의 방음실력이 너무 빵빵해서 그런가.

2. 전엔 지하철을 탈 때 읽을거리가 없으면 불안했다. 한겨레21과 책, 풍경소리 중 하나는
꼭 가방 안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읽을거리가 없어도 별로 불안하지 않다.
바꾼 새 핸드폰에 게임이 완전 빵빵하게 들어있기 때문-.-  이번에 바꾼 건 쿠키폰인데
울 남편도 같은 폰이다. 지금까지 폰을 쓰면서 내린 남편과 나의 결론은 "이건 닌텐도DS다."



100% 무료 독자는 아니었으나
정기구독 하겠다고 마음 먹은지 몇 년만에 정기구독을 하게 된 한겨레 21.
직장도 때려쳐서 주머니 사정 빡빡한 지금 정기구독을 감행한 건
한겨레 21이 '아름다운 동행'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들도 그다지 넉넉하지 않지만,
정기구독료의 20%를 시민단체에게 후원금으로 주겠다는 그 마음이 이뻐서
6.10항쟁 기념일에 민주주의 진보에 살짝 힘 보태보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결단.
뿌듯하구나-

+라디오를 듣는데 패닉의 '왼손잡이'가 나왔다.
고등학생 때 이 노래가 나왔는데, 항간에 그런 소문이 돌았다. 이적이 빨갱이라는. 왼손잡이도 그런 노래라는. 그 말에 패닉이라는 녀석들이 불온한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에게도 뿌리 깊게 내린 반공, 좌빨 --; 그런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것 중 하나는 한겨레 21일터. 고맙다.

한동안 손 놓았던 드립을 연습하려고 가배나루에 갔는데
대표님 왈, "하루에 커피숍이 3개가 생긴대. 얼마나 많이 망할까"
퇴직하고 너도 나도 단기 바리스타 과정 듣고 커피숍을 연다면 하신 말씀이다.

직장인의 로망, 까페창업.
그러나 실제로 까페를 운영하는 건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만만하지도 않단다.
가배나루 대표님은 누군가 창업에 대해 물으면 단번에 하지 말라고 한다.
특히 단기 바리스타 과정 듣고 창업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커피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녀석이란다. 그래서 수십시간의 과정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

나 역시 6개월은 커피에 물 한방울 떨어뜨리지 못했다.
그저 물줄기만 잡았다가 커피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마저도 TESOL 한답시고 연습 쉬었다가 감을 잃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  에휴.. 다시 열심히 집중!!

한겨레21에 까페 창업 관련 기사가 있길래 링크~  

카페, 그 우아한 밥벌이의 꿈
성공의 지름길은 발품과 공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 밥벌이 때문에 공무원 했고
그래도 영혼까지는 팔기 싫을 뿐이고
그래서 4년동안 연극해야 할 뿐이고

한겨레21 비밀엽서코너에 누군가가 보낸 엽서다. 이 사람 4년이 끔찍하겠지.

한겨레 21 <아빠가 달라졌다, 에코파파가 됐다>

한겨레 21 <우리 일터는 얼마나 '에코'적일까>

한겨레 21 <겨울에 내복 입으시나요?>


내 삶의 중요한 화두, 가족과 환경.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환경 보호는 필수적이라는 깨달음 이후
바뀐 것이 많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부터.


한겨레 21 <벌금 폭탄 안고 새해맞은 활동가들> 기사 읽기

가끔씩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만나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안 든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명예나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한겨레 21 기사처럼, 벌금 폭탄을 받거나 경찰서나 법정에 가는 일도 많은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활동하게 할까?
단지 신념하나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가치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꿋꿋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모든 활동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내게도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며 뛰어들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어쩌면 이미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용기가 없는 것일수도.
그렇다면, 용기를 주시기를,
결단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를 고민하며
위의 기사 이야기와 함께 결단하지 못하는 내 마음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남편은 늘 이야기하듯 (진심을 담아) 이야기 했다.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돈이나 내 걱정은 말고."

결혼하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한결같이 말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마트에 발길 끊은 이야기에 이은 고기 끊은 이야기.
'끊기' 시리즈 2라고나 할까.

대학 다닐 때 예배드리러 가던 푸른마을교회 목사님께서 졸업선물로 스콧니어링 자서전을 주셨다.
채식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생각에 동조하는데 나도 채식을 해야 하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채식을 해야하나 생각을 했었으나 선뜻 시작할 용기가 안 났는데
역시 나의 친구, 한겨레 21 <채식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 기사를 읽으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워낙 친정 식구나 시댁 식구들 모두 고기를 좋아해서 고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안 먹는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그리고 고기를 먹지 않고 먹을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건 정말 기우였다.
(유혹을 내가 잘 이겨냈다기 보다 안 먹기로 한 신념이 유혹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이 되었다.)  

채식하는 이유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1. 고기를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에게 엄청난 양의 곡식을 주는데,
    지구 반대편에는 쌀 한줌이 없어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면 그 만큼의 곡식이 사람들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2. 육식은 채식보다 비환경적이다.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되고, 오염물질이 더 많이 발생한다.
3. 생명을 죽일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아직 나는 가금류만 먹지않는 '페스코'인데,
언젠가는 계란 우유까지만 또는 완전히 식물만 먹는 '락토오보'나 '비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하나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내 행동을 보고 조금이나마 생각해보고 결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 얼마 전에 용인에 있는 친구부부가 날 위해 채식음식점에 데리고 갔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고 싶네~~ㅎㅎ

참고: 레이디경향 <가족 건강지키는 올바른 채식 전환법>


시민사회신문 <대형마트, 비정규직 확산 온상?> 기사 보기


지난 해 한겨레21에서 <이마트의 나라, 대한민국>에 관한 글을 보고 하나 결심한 게 있다.
대형마트에서 발 끊기.
그 무렵 생협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대형마트에 발을 끊게 되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왜 대형마트에서 발을 끊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겨레 21을 읽으면서 정립하는 기회가 있었다.

1. 대형마트는 비환경적이다.
2. 대형마트는 비정규직에 기반하여 이익을 창출한다.
3. 대형마트는 지역공동체를 붕괴한다.
4. 대형마트는 비정상적인 가격을 제시, 소비자와 공급자를 모두 우롱한다.

간단하게 적자면 위와 같다.
대형마트에 가기 위해 사람들은 차를 끌고 이동한다. 그리고 다 쓰지도 못할 뭉텅이 상품을 사고 결국엔 버린다. 대형마트의 물건진열을 위해 생기는 물류 이동거리는 지구 몇바퀴 쯤 되고, 대형마트로 인해 지역 상권은 죽어버리며 이야기가 있는 지역공동체는 사라진다. 업체 역시 대형마트에서 요구하는 1+1 같은 행사를 울며 겨자먹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낮은 가격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낮은 임금에서 발생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마트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나?
돈이 사람 위에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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